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첫 방한 일정은 직전 방문국인 일본 일정과 여러모로 비교된다. 틸러슨 장관과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와의 만찬 일정은 잡히지 않았고, 공동기자회견 역시 한·미 외교장관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뤄졌다. 차기 정부 출범을 두 달도 남겨놓지 않은 과도기적 상황을 반영해 형식적인 일정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첫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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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러슨, 수장없는 韓 외교 무시?
틸러슨 장관은 17일 오전 국무부 장관 전용기편으로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관계자들과 악수하자마자 UH-60 블랙호크 헬기를 타고 비무장지대(DMZ)로 이동했다. 오후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예방, 공동 기자회견,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일정을 차례로 소화했다.
틸러슨 장관은 1976년 ‘도끼 만행사건’이 발생했던 DMZ 내 ‘캠프 보니파스’를 찾아 주한미군 장병들을 격려했다. 북한 지역을 바라보며 브리핑을 받고,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도 둘러봤다. 방한 첫 공식일정을 DMZ로 시작한 것은 그만큼 미국 신행정부에 북한 문제가 중요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최근 북한의 도발 위협에 ‘무언의 경고’를 보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DMZ 방문으로 이번 한·중·일 순방의 초점이 어디 있는지 분명해졌지만 24시간의 짧은 방한 일정은 더욱 촉박해졌다. 공동기자회견이 회담 시작도 전에 열리게 된 것이 단적인 예다. 통상 기자회견은 회담 이후 결과를 놓고 이뤄져야 하는데, 회담 시작 전에 기자회견부터 열게 된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회견을 뒤에 하면 회담을 쫓기듯 진행해야 해 사전회견 형식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1박2일간의 방한 일정이었지만 한·미 외교장관은 회담 이후 별도의 만찬 일정도 없이 따로 식사를 했다. 통상 고위급회담을 진행하면 오찬이나 만찬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만 이런 절차도 생략된 것이다. 틸러슨 장관은 미국 측 인사들과 별도로 만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틸러슨 장관은 2박3일간의 일본 방문에서 미·일 외교장관회담 이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두 장관은 16일 오후 2시15분부터 1시간20분 정도 회담한 후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회담이 끝난 뒤 틸러슨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같은 날 오후 5시40분부터 업무 협의를 겸한 만찬을 함께했다.
한·일 간 차이는 국내 정치 상황이 감안됐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5월 9일 국내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상황에서 틸러슨 장관의 대화 상대 역시 바뀔 가능성이 큰 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다음 정부 출범 전까지 ‘외교 공백’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드 배치나 북한 도발 등 문제에서 우리 정부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결국 지금 우리 정부는 이야기 상대가 아니라는 의미”라며 “향후 사드 배치 일정 등도 본인들이 결정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현길 조성은 기자 hgkim@kmib.co.kr, 사진= 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