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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서호주 카리지니국립공원의 협곡과 별밤

서호주 카리지니국립공원의 협곡과 별밤, 그리고 진주의 도시 브룸의 글입니다

 

 

지구촌 기행 - 서호주 카리지니국립공원의 협곡과 별밤, 그리고 진주의 도시 브룸

원시 밤하늘 아래서 만난 ‘원시 지구의 붉은 속살’

글·사진 | 이병학
(한겨레신문 여행레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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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협곡 끝의 비좁은 절벽틈. 절벽 틈을 통과하면 레드협곡과 만난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는 넓이가 한반도의 35배, 남한의 77배에 이르는 나라다.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나라지만, 인구는 2천만 명을 조금 웃돈다. 이 인구밀도 희박한, 광활한 대륙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이른바 오지가 지천이다.
 
오스트레일리아를 구성하는 6개 주 가운데 가장 넓고, 가장 신비롭고, 가장 덜 알려진 지역이 서오스트레일리아(서호주)다.

유칼립투스나무와 바오밥나무들이 지배하는 붉은 땅, 아득한 지평선의 맨땅에서 곧바로 해와 달과 주먹만 한 별들이 뜨고 지는 곳, 그리고 광활한 들판에 깊은 상처처럼 파인 협곡들이 35억 년 전 지구의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곳 서호주의 중북부 지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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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녹스협곡 탐방길엔 바닥을 흐르는 하천을 여러 번 건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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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녹스협곡은 난이도가 중간급이어서 가족단위로 찾는 탐방객도 많다.)



35억 년 전 지구 속살 드러낸 9개의 붉은 협곡들

서호주 서북부 필바라 지역에 있는 카리지니국립공원은 지질학의 보물창고로 불린다. 35억년 전에 바다 밑에서 형성된 지층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좁고 깊고 신비로운 협곡들과 평원에 널려 침식돼 가는 독특한 암석층들이 있어서다.
 
국립공원 일대는 산맥지형에 속해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산지는 찾아볼 수 없고, 거의 완만하게 다듬어진 구릉지대 뿐이다.
 
이 넓디넓은 대지를 구성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온통 평원을 뒤덮고 있는 ‘스피니펙스’라 불리는, 날카로운 침들을 숨긴 풀과 유칼립투스나무, 황토 움집을 연상케 하는 2m 안팎 높이의 흰개미(바퀴벌레의 일종) 집들, 그리고 일직선으로 내달리다 지평선에서 소실돼 버리는 붉은 흙길들이다.

호주에서 2번째로 규모가 크다는 카리지니국립공원 탐방의 출점은 국립공원 방문자센터다. 역시 광활한 벌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곳 전시관에서 지구 지층 형성과정 및 이 지역 광산개발의 역사, 광산 관련 유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카리지니국립공원의 핵심 볼거리는 9개에 이르는 비좁은 협곡(고지)들이다. 산화철 성분으로 이뤄진 지층이 수십 수백만 권의 붉은 책들처럼 쌓인 평지 협곡들이다.

35억 년 전 바다에 번성하던 원시 박테리아인 시아노박테리아(남조류)가 지구에 처음으로 산소를 만들어 내면서 산화된 철 성분이 수억 년 동안 바다 밑에 쌓여 이뤄진 지층이라고 한다. 육지가 된 땅에 침식작용으로 협곡이 생기면서, 옛 지층의 속살이 드러난 것이다.

각 협곡들엔 전망대가 설치돼 있어 절벽 위에서, 오랜 세월 물살에 파여 드러난 협곡들을 감상할 수 있다. 층층이 쌓인 붉은 지층과 굽이치는 물길, 깊고 푸른 협곡 호수들과 폭포들이 먼 거리에서 바라봐도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지구의 속살을 제대로 만나려면 절벽을 타고 내려가 협곡 밑바닥을 탐방해야 한다. 협곡들엔 밑바닥을 따라 이동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들이 마련돼 있다.

각 코스들은 1~6까지의 난이도에 따라 트레킹 장비나 준비, 탐방시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가장 유명하고 또 가장 험한 코스가‘지구의 중심’이라 불리는 핸콕 고지(협곡)다.

안전장비를 갖추고 손끝과 발끝의 힘을 이용해 지층들의 틈을 잡고 디디며 100m가 넘는 협곡을 내려가 밑바닥의 지층들과 차가운 물웅덩이들을 탐방하고 돌아오는 8시간짜리 코스다. 위험한 코스여서 일정한 체력을 갖춘 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하루 탐방인원도 10명 이하로 제한한다.

중급 난이도를 가진 협곡으론 데일스 고지나 녹스 고지가 있다. 큰 어려움 없이 협곡의 진면목을 즐길 수 있는 코스여서, 자녀를 동반한 가족단위 탐방객들도 많이 찾는다.

녹스 고지는 깊이 40여m의 협곡 밑 물길·숲길을 따라 걸으며, 35억 년 전 지층이 드러내는 붉고 웅장한 절벽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2km 길이의 3시간짜리 트레킹 코스다.
 
붉은 철판들 사이에선 간혹, 부드럽게 휘거나 뭉쳐진 흰 띠가 눈에 띄는데, 바다에 살던 단세포생물 규조류의 투명한 껍질층이 가라앉아 쌓여 형성된 지층(처트층)이다.

서호주 지역에서만 산화철 층과 처트 층이 함께 나타난다고 한다. 녹스 고지 끝부분은 협곡이 매우 비좁아지는 부분으로, 특수 장비 없이는 탐방을 금하는 곳이다.

첩첩이 겹쳐진 붉은 절벽들과 그 밑을 파고들어 흐르는 물길이 장관이다. 또 다른 협곡인 레드 고지와 만나는 부분이다.
 
협곡을 탐방하는 동안 비좁은 골짜기를 파고든 강렬한 햇빛에 반짝이는 물빛과 붉고 단단한 지층들, 그리고 물가에 우거지고 쓰러진 나무들이 빚어내는 묘한 조화에 발걸음이 느려지는 걸 느끼게 된다. 일부 구간은 좁은 바위틈을 딛고 돌아가야 하는 등 위험한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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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카리지니 대자연 탐방은 협곡으로 하산하면서 시작된다. 녹스협곡 들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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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협곡 지층에선 35억 년 전 바다 밑 규조류가 쌓인 부분을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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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녹스협곡 퇴적암 층에 뿌리내린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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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녹스협곡)


온 하늘 가득 메운 별·별·별·별…

서호주 필바라 지역의 ‘나이트 라이프’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정해져 있다. 세상의 스타들, 별의별 별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일이다.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정말 아름답고 환상적이고 휘황찬란한 엄청난 별들을 직시할 수 있다.
 
서호주 필바라 지역은 ‘지구상 최고의 밤하늘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일컬어진다. 별빛에 은은히 빛나는 유칼립투스나무 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머리끝 지평선에서 발끝 지평선까지 전후좌우 하늘이 모두 별들로 가득 차 있다.

카리지니 국립공원의 친환경 숙소인 에코리트리트의 고정식 텐트들에선 기본적으로 전기를 쓰지 않는다(화장실 등은 예외). 빛 간섭 없는 완벽한 밤하늘을 누리기 위해서다.

밤하늘을 둘로 가르는 무수한 별가루들이 흐르는 은하수를 기본으로, 주먹만 한 별 금성·목성과 무수한 별들이 모인 폴리아데스 성단, 은하수 곁에서 뚜렷이 빛나는 대마젤란·소마젤란 은하, 그리고 남반구 밤하늘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남십자자리(남십자성)와 남극점(별은 없는)까지 샅샅이 드러나, 밤새 눈을 감을 수 없게 한다.

필바라 지역이 워낙 넓고 건조한 사막지역인데다, 간섭하는 빛들이 없는 곳이어서 완벽한 어둠만이 보여줄 수 있는 깨끗한 밤하늘이 가능하다.

별 관찰의 기본은 별자리다. 약 5,000년 전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에서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수많은 별자리들이 점술이나 항해 등에 이용돼 왔다.

현재는 국제천문연맹이 공인한 88개의 별자리(서양식)가 통용되고 있다. 이 중 한국에선 60여 개를 볼 수 있고, 시야가 넓은 서호주 북부 밤하늘에선 80개 안팎의 별자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남반구의 밤하늘에서 만나는 천체 중 흥미로운 것이 남동쪽 은하수 띠 옆에 작은 구름 조각처럼 거리를 두고 떠 있는 대마젤란·소마젤란 은하다.

각각 우리 은하에서 16만 광년, 20만 광년 거리에 있는 두 은하는 우리 은하계와 가장 가까운 은하들에 속한다. 대마젤란은하의 별 중 하나가 폭발하는 모습이 1987년 관찰됐는데, 16만 년 전에 폭발이 있었던 셈이다.

에코 리트리트에서 매일 밤 진행하는 별자리 탐사에 참가하면, 별과 별자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10인치 반사망원경으로 은하들과 태양계 행성 등을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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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서호주 카리지니 국립공원의 숙소 에코 리트리트와 밤하늘)


서호주 북부 탐방 거점인 ‘진주의 도시’ 브룸

브룸은 호주 북서부 인도양에 접한 해안도시다. 인구 5만 명, 서호주의 주도인 퍼스에 이은 서호주 제2의 도시다. 깨끗한 바다와 이색적 지형의 해안들, 다양한 경관과 볼거리로 최근 북서부 지역 관광의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휴양도시다.

브룸은 호주의 대표적인 아웃백 지역이자 미개척지로 불리는 킴벌리 지역으로 들어서는 관문이기도 하다.

브룸이란 지명은 이미 19세기 말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날렸다. 진주조개 때문이다. “1900년대초 까지는 전세계 진주의 80%가 여기서 생산돼 공급됐다.”

브룸은 애초부터 진주조개로 인해 형성된 도시다. 1883년 이곳 앞바다에 진주조개가 대량으로 번식하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이주해 와 도시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브룸이란 도시명 자체가 당시 총독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브룸의 진주 생산 산업은 1950년대 인공 진주가 나오면서 쇠퇴해 현재는 1,000여 명만이 진주 생산에 관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브룸은 깨끗하고 선명한 진주를 빠른 시간 안에 생산하는 것으로 이름 높다.

거리를 거닐며 즐비한 진주 판매장과 진주조개 채취 체험장, 재현해 놓은 진주조개잡이 배 등을 찾아볼 만하다. 5대째 진주를 파는 매장도 있다.
 
브룸 거리를 아름답고 이색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가로수로 심어진 대형 바오밥나무들이다. 카리지니국립공원 등 필바라 지역에선 볼 수 없었던, 밑동 쪽만 뚱뚱한 바오밥나무들이 거리마다 묵직한 자태로 줄지어 서 있다.

바오밥나무는 아프리카대륙과 마다가스카르섬, 그리고 호주에 서식하는 밑둥이 유난히 뚱뚱한 대형 나무다.

브룸의 인도양 바다 빛깔은 진한 옥빛이다. 서너 곳에 있는 모래 해변과 바위 해변 중 가장 이름 높고 인파가 몰리는 곳이 길이 22㎞에 이르는 케이블 비치다.
 
한낮에 해수욕객·낚시객들만 간간이 보이던 그 넓은 해변이, 해 질 녘이 되자 해변과 해변이 보이는 잔디밭 옆 난간마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북적였다. 해넘이를 감상하려는 이들이다.

특히 잔디밭엔 눕거나 앉은 사람, 둥글게 모여 앉아 음식을 먹는 사람들, 맥주 캔을 들고 쌍쌍이 마주 앉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북새통을 이뤘다.

또 다른 이색적인 풍경이 길고 긴 낙타 행렬이다. 해가 지는 시각에 맞춰 낙타를 타고 이동하며 해넘이를 감상하는 이들이다. 낙타 해넘이 투어는 브룸 여행의 필수 코스로 여길 만큼 인기 있다.

브룸을 가장 쉽고 빨리 둘러보는 방법이 시티투어 버스를 타는 것이다. 60호주달러만 내면 2시간 30분 동안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대표적인 볼거리들을 섭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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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서호주의 북부 휴양도시 브룸엔 바오밥나무들이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서호주 트래블 팁

싱가포르를 경유해 서호주 퍼스로 간다. 싱가포르항공(www.singaporeair.com)이 인천~싱가포르를 매일 4회, 싱가포르~퍼스는 매일 3회씩 운항한다. 인천에서 싱가포르를 경유해 퍼스까지 운항한다. 총 비행시간 11시간 남짓. 퍼스에선 버진오스트레일리아항공을 이용해 뉴먼·브룸 등으로 간다. 뉴먼까지 2시간 소요.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늦다. 콘센트 형태가 달라 다기능 멀티탭을 준비해야 한다. 1호주달러는 약 1,200원.

아웃백·부시=아웃백이란 호주 내륙의 건조한 불모지를 말한다. 부시는 아웃백보다는 조금 여건이 나은 황무지를 뜻한다. 두 지역은 흔히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곳이냐 여부로 구별한다. 대체로 해안에서 150㎞ 정도까지 키 작은 나무들이 깔린 내륙을 부시, 그 안쪽의 건조한 사막지역이 아웃백이라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