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戒)는 불자들이 지켜야 할 행동지침이다. 스님들이나 신도들이나 계와 함께 받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법명(法名)이다. 불교에 입문한 만큼 참된 부처님의 제자로 거듭나라는 취지에서 어른 스님들이 새로 지어주는 이름이다. 불명(佛名) 혹은 계명(戒名)이라고도 한다.
법명을 부여하는 일은 매우 오래된 전통이다.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다. ‘아나따삔디까’ 장자(長者)의 경우 부처님에게 귀의하기 전의 이름은 ‘수닷타’였다. 사리불 존자의 본명은 ‘우빠띳사’였는데, 부처님의 제자가 된 후에는 ‘사리의 아들’이란 뜻을 지닌 ‘사리푸트라’로 기록됐다. 속명이 ‘꼴리따’였던 목련존자 역시 출가하면서부터 ‘마하목갈라냐’로 불렸다.
현재 한국불교에선 법명을 받는 본인의 신심과 원력을 독려하고 선행을 촉진하기 위한 방법으로 법명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성격이 모난 이에게는 원(圓)이나 자(慈)와 같은 글자를 붙여 너그러움과 친화력을 일깨우는 식이다. 물론 정해진 규칙은 없다. 내용이 불교적이고 듣기에 거슬리지 않으면 무엇이든 무방하다.
여성 ‘어미’ 흔적 등 추측 다양
글자 수보다 법명 같은 삶 중요
불교 교단은 비구(남자 스님)와 비구니(여자 스님), 우바새(남자 신도)와 우바이(여자 신도)로 구성된다. 그래서 사부대중(四部大衆)이다. 이상한 것은 통상적으로 법명은 두 글자이지만, 유독 여성 신도에게는 세 글자로 된 법명을 준다는 점이다.
혜명화 무량심 진여성 등이 비근한 사례다. ‘화(華)’ ‘심(心)’ ‘성(性)’은 일종의 접미사적인 성격을 띤다. 이밖에도 각(覺), 광(光), 덕(德), 도(道), 도(度), 등(燈), 력(力), 신(信), 행(行), 향(香) 등의 음절이 사용된다.
‘세 글자 법명’은 한국불교에만 있는 독특한 관습으로 알려졌다. 그래야 한다는 경전적 근거가 있는 것도, 언제부터 그랬다는 문헌기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조선시대 후기부터 시작됐다고 추정할 따름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난 이후 대대적인 경전 판각사업이 전개되는데, 목판본 시주자 명단에 세 글자 법명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여하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별다른 의심이나 불만이 없는 관행이다.
최근 법명의 유형과 원리 분석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해 주목받은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는 다만 “여성 불자들이 남성보다 적극적으로 신행활동을 하기 때문에, 이를 더욱 격려한다는 맥락에서 한 글자를 더 붙인 것이 아닌지 추측해볼 뿐”이라고 밝혔다.
‘치마불교’라는 말에서 보듯 우리나라 여성 신도들의 열성적인 신심과 선행은 유명하다. 이들의 보시와 봉사 없이는 사찰이 존속되기 어려울 정도다. 결국 ‘세 글자 법명’은 이들의 실천적 성향을 종용하려는 의도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여래심(如來心)이란 법명엔 ‘부처님과 같은 마음을 내라’는 당부가 깔려 있다.
한편으론 관세음보살이 여성화되면서 비롯된 현상이란 의견도 보인다.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은 동아시아로 건너와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상징을 갖게 됐고, 기복(祈福)의 주된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흔히 여성 신도를 보살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며 세 글자 법명 또한 관세음의 변용이란 관점이다. ‘관세음’ ‘대세지’ ‘상불경’처럼 불보살의 명호(名號)가 세글자인 경우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초기불교에서 쓰던 빨리어나 산스크리트에 있는 여성어미의 흔적이라고 짐작하기도 한다.
이즈막엔 보편적인 두 글자 법명을 요구하는 우바이들이 많아졌다는 전언이다. 세 글자 법명을 여성에 대한 또 다른 폄하로 여기는 까닭이다.
해인총림 해인사 율원장 서봉스님은 “두 글자든 세 글자든 자수(字數)가 중요한 게 아니라 법명의 의미와 법명대로 살겠다는 의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청정하고 바른 마음을 담은 이름인 만큼, 정성껏 지어주고 마음을 다해 받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불교신문3082호/2015년2월14일자]